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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0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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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의 역사와 문화(고대사편)
거제의 역사와 문화(관장)

거제도의 면적은 400km²이고, 현재 인구는 약 23만 명 정도이며, 해안선의 길이는 280km정도이다.
1인당 소득수준은 30,000달러를 넘는다고 알려져 있고, 세계굴지의 조선소인 대우조선과 삼성조선 등 2개나 있어 선박생산량으로 치면 세계 제일의 도시인 셈이다.
관광산업과 수산양식업이 그 뒤를 잇고 있어, 거제는 풍요로운 고장임에 틀림없다.

임진왜란당시 최초의 승전지였던 옥포만과 6.25동란 때 17만 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던 이곳 거제는 승리와 역사의 고장이기도 하다.
거제도에는 약 60여개의 섬이 있고, 그중 사람이 사는 섬 만 해도 칠천도, 가조도, 산달도, 이수도, 내도, 지심도, 외도, 황덕도, 고개섬, 화도,(방화도)등10개(11개, 방화도는 기록은 있으나 실 거주자 확인 안됨)의 유인도서와 50여개의 무인도로 구성되어있다.

울릉도나 제주도가 화산활동에 의해 생겨난 섬이라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면 거제도는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육지의 한 부분이 융기하여 산을 만들고 그 중 낮고 잘룩한 부분에 바닷물이 흘러서 섬이 된 것일까?

외도의 공룡발자국은 이 섬이 중생대백악기(지금부터 7천만년전)때까지만 해도 육지의 일부로서 공룡이 서식하던 곳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하청면 바닷가의 화산암과 가조도 옥녀봉의 분화구, 그리고 팔안포의(지금은 해안도로 때문에 묻혀버렸지만 )드러누운 주상절리는 이곳 역시 부분적으로 화산활동이 있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또, 운석이 떨어지면서 생긴 거대한 크래이터에 바닷물이 들어와 옥포만이나 지세포만 등 둥근 해안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거제는 이처럼 복잡한 여러 가지 탄생의 배경을 생각하게 하는 섬이다.
공룡이 멸종한 뒤에 오랫동안 이곳에는 아직 생명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인류탄생의 시발점이라는 아프리카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고,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중국의 황하로부터도 멀리 떨어진 이곳에 사람의 흔적이 보이는 시기는 중석기 시대(중석기를 상정하지 않을 경우는 신석기로 보면된다.)부터이다.

내도분교운동장의 패총과 그 맞은편 대안의 공고지에서 중석기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흑요석 석기의 발견과 산달도의 패총에서 신석기의 융기문 토기편이 발견되고 난 이후 이 섬의 곳곳에서는 신석기의 흔적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한국 사학계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가조도의 경작지에서 발견된 타제석기들은 이 섬이 신석기이전 구석기까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유물이 되고 있으며, 흑요석 석기의 발견은 적어도 일본 큐우슈우 지방과의 교류나 아니면 부산 영도 동삼동에서 발견된 흑요석 사용집단이 남해안을 따라 거제도까지 흘러왔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먹을 것과 따뜻한 기후가 원시인류의 생존조건에는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풍부한 해산물과 온난한 해안가는 그들이 생존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생활의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이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공고지에서 발견된 공열문 토기편과 빗살무늬 토기편, 마제석부(돌도끼)와 여러 가지 석기류는 거제박물관과 공고지의 강명석씨가 보유하고있다.

신석기시대의 움집터를 발굴하진 못했지만 이목저수지 주변의 구릉지대에서는 유구석부(홈자귀)를 비롯한 갈돌과 갈판 등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곳에 움집이 존재했을 개연성은 크다.

신석기를 거친 이들은 청동기시대로 접어든다. 기원전 1000년경부터 기원전 300년까지의 700년 동안을 국내에서는 청동기 시대로 보고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대략 3,000년 전 부터 2,300년 전 까지가 된다고 본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고인돌(지석묘)을 든다. 지세포, 덕포, 아주, 청곡, 연사, 둔덕방하와 내도등에서도 많은 고인돌이 발견된다.
이 고인돌은 당시 사람들의 무덤으로서 장방형(직사각형)구덩이를 파고 바닥에 편평한 돌을 깔고. 그 끝에서 지표면에 이르기까지 돌을 쌓아 그 속에 시신을 안장하고 부장품(껴묻꺼리)을 묻는다.
이때 주로 함께 묻는 것으로는 마제석검(간 돌검)과 마제석촉(돌 화살촉), 그리고 간토기(붉은토기)가 있고 실제로 발견되었다.

특히 아주동에서 발견된 청동 허리띠 대구(버클)는 당시의 청동제 사용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되고 있으며, 이목저수지에서 발견된 마제석검과 석촉, 하청에서 발견된 마제석검등도 청동기시대의 귀중한 유물이라 볼 수 있다.
기원전 300년부터 기원전후까지의 약 300년까지를 초기철기시대라 하는데 그 기간이 짧아 유적이나 유물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거제면 남동리 야산에서 발견된 옹관편과 약간의 토기편 특히 시루형토기의 바닥으로 추정되는 토기편으로 미뤄보아 이 시기에 생식에서 화식(익혀먹는 식습관)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여기까지가 대체로 선사시대로 이해되고 있으나 거제도가 역사서에 등장하는 것은 그 보다도 2 세기 정도가 지난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진수)의 위지 동이전에서이다.
동이는 한반도에 거주하는 집단을 말하고, 그 중에서 변진조에 의하면 변진 24개국 중 두로국(瀆盧國)이라는 작은 국가가 소개된다. 부산에서는 부산의 동래를 독로국이라하면서 부산의 유래를 그곳으로부터 하고 있으나, 그곳에서 증거로 하는 유물은  대략 4세기의 것이어서 취할 바가 못 된다고 본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두로국에 관한 설명은 왜와 경계를 접하고,  북쪽은 바다로 막혀있다고 했으니 거제도란 설명이 맞을 것이다.
또한 조선 순조때의 실학자인 정약용의 아방강역고(我邦彊域考)를 증보한 1903년 장지연의 대한강역고(大韓彊域考)의 도판에도 거제도를 삼한시대의 두로라고 적혀있고, 거제의 기성관 상량문에는 두로(豆盧)로, 또 1423년에 축조된 고현(성) 축성기에도 거제도의 옛 명칭이 두로(豆盧)라고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간혹 거제를 독로국이라고 하는 이가 있는데, 瀆, 豆, 周 등의 글자에서 발음은 ‘두’로 함께 사용되었다는 점을 알면 두로국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또한 변한 사람은 머리에 변(고깔)을 쓰고 있다는 일본서기의 내용으로 보면 아주에서 발굴된 토우달리 뚜껑의 토우역시 머리에 고깔을 쓴 모습을 볼 수 있다.

마한과 변한, 진한 삼국의 시대를 삼한시대라고 하며, 마한은 백제로, 변한은 가야로, 진한은 각각 신라로 발전한다.
정확히 이들 나라의 생멸시기를 알 수는 없으나 가야는 여러 개의 소 부족으로 나뉘어 있다가 6개의 6가야 연맹체로 발전되고, 거제는 두로국에서 가야연맹체로 통합되었다고 보여진다.

또한 이 시기에 포상8국 중 거제도가 칠포라는 말이 나오는데 가야 연맹체의 느슨한 동맹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 본다.
가야연맹체가 철을 생산하여 왜와 낙랑에 수출하면서 서로 경쟁적 발전을 구가했다는 것과 당시로서는 훌륭한 무기였던 철검과 쇠 화살촉 그리고 투구와 갑옷, 말의 투구등은 다른 인근국가에서는 흉내낼 수 없는 무기였지만 가야는 고재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백제와 신라에 각각 병합되고, 금관가야가 532년 신라에 병합되면서 거제는 신라에 예편되게 된다.

그 후에 신라의 지방체제에서 거제는 문무왕때에 상군(裳郡)을 두어 다스린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상은 두루마기, 혹은 치마를 의미하는 것으로 옛날에는 두로기군, 두로군 등으로 불렸을 것으로 보여 진다.
또한  이때에 거로(巨老,) 매진이(買珍伊), 남수(南垂)의 3영현을 두어 다스렸는데 경덕왕때에  거로는 아주(鵝州)로, 매진이는 명진(溟珍), 남수는 송변(松邊)으로 각각 바꾸어 다스렸다한다.

여기서 거로는 거위의 옛말로 그곳의 지명이 거위와 닮았다는 말과 그 지역을 다스리는 총괄책임자가 있던 곳이라는 말이 있고, 후에 아주라고 적고도 거로주라고 읽었을 것으로 보여지며, 매진이는 지금의 명진을 (거제도의 사투리 억양에 명을 맹이라고 하고, 고어화법에서 받침을 생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명진이라고 쓰고도 매진이, 혹은 매지이로 발음한 것으로 보여진다. 일본역시 받침을 생략한 경우를 본다.) 남수 혹은 송변은 다대일원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가지가 대체로 거제의 고대사에 관한 중요부분을 약술한 것이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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